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문단 편집) === [[케빈 가넷]]의 시대 === 1995년에 단장으로 승진한 맥헤일은 베테랑 지도자 [[플립 손더스]]를 감독으로 부르고, 드래프트에서 전체 5번으로 고졸 출신 [[케빈 가넷]]을 뽑았다. 모제스 말론 이후 고졸 스타가 나오지 않은 터라 팬들과 기자들은 모두 "웬 고등학생?" 이러면서 우려를 표했지만, 그들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가넷을 중심으로 리빌딩에 들어간 미네소타는 서부 컨퍼런스의 강호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1996/97 시즌을 앞두고 레이트너를 애틀랜타 호크스에 판 후, 가넷을 중심으로 첫 PO 진출에 성공해 이 때부터 8시즌 연속 PO 진출의 위업을 이룬다. 하지만 그 중 앞의 일곱 시즌은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만다. 가넷이 원맨으로 활약하면서 은근히 샐러리도 많이 잡아 먹었고, 결정적으로 샐러리 캡을 줄이겠다고 [[조 스미스 이면계약 파동|조 스미스에게 저가 계약 & 래리 버드 예외조항의 적용을 매개로 하는 이면 계약을 맺은 것이 발각되면서 팀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1라운드 지명권을 5년간 박탈당한 것이 컸다.]] 또한 가넷의 든든한 조력자가 될 것 같았건 [[스테판 마버리]]가 2인자의 역할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트레이드를 요청하면서[* 결정타가 된게 가넷이 97년에 맺은 6년, 1억2천만불 계약이었다. 사실 연봉은 돈 문제도 있지만 선수들간의 자존심 싸움도 있다. 윌트 체임벌린이 계약할 때까지 버티고 버티다가 윌트의 계약 액수가 나오자 거기에 1달러를 더해서 계약해버린 빌 러셀이 좋은 예. 가넷의 조력자가 되길 한사코 거부한 마버리는 "1달러라도 적은 금액엔 싸인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결국 그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터렐 브랜든을 받고 마버리를 보내버린다.[* 당시 가넷과 마버리는 칼 말론&존 스탁턴의 뒤를 이을 것으로 예상되는 재능 넘치는 듀오였다. 마버리는 188cm의 키에도 경기중 윈드밀 덩크를 꽂을 정도로 엄청난 점프력과 스피드, 역대급 드리블 실력에 슈팅력까지 갖춘 뛰어난 득점원이었고, PG를 보기 충분한 좋은 시야와 패싱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앨런 아이버슨의 예로 보듯이 패스를 잘하고 시야가 넓다고 PG인 것은 아니다. 마버리는 동료들을 살리기보단 자기가 중심이 되어야 직성이 풀리는 선수였고, 이때문에 그가 중심이 된 팀은 성공하지 못했다. 실제로 마버리를 보내버린 팀들은 거의 매번 마버리가 뛸때보다 성적이 뛰었다. 그중 뉴저지와 피닉스는 플레이오프 턱걸이 팀에서 단번에 우승을 노리는 수준으로 오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워낙 재능이 천재적이라 뉴욕 닉스 시절까진 그래도 리그 정상급 PG로 평가받았으나 닉스 시절에 코트 안팎으로 팀을 말아먹고 기량까지 점점 하락하면서 돌이킬수 없게 되었다. 정작 중국으로 넘어간 뒤엔 리더쉽이 향상되어 소속팀과 팬들에게 사랑받는 스타가 됐다.] 브랜든은 올스타에도 뽑힐 정도로 좋은 선수였고 비이기적인 포인트 가드였으나 안타깝게 금방 부상으로 드러누워 다시 울브스는 원맨팀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래도 조금만 더 하면, 우승이 보일 것 같던 상황이라 [[라트렐 스프리웰]]과 [[샘 카셀]]을 영입하며 나름대로 빅 3를 만들고 정상에 도전해 2003-04 시즌에 지구 우승과 함께, PO에서도 드디어 1회전을 통과하며 컨퍼런스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이 당시 최강자였던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게 패하면서 우승 도전에는 실패. [[케빈 가넷]]이 팀 역사상 최초의 MVP가 된 것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이듬해부터 미네소타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44승을 거두고도 한 게임차로 밀려서 PO 진출에 실패한 것에서부터 뭔가 어긋나더니, 스프리웰은 가족 부양을 이유로 연봉 인상을 요구하면서 팀 분위기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결국 다시금 리빌딩 모드로 돌입해야 했고, 팀을 지켜온 가넷도 우승 반지를 위해 트레이드를 요구하면서[* 이 과정이 가넷 팬들에게는 참 눈물겨운데, 04~05 부터 06~07까지 세 시즌간 전성기를 달리고 있던 가넷임에도 불구하고 에디 그리핀이나 마이클 올로워칸디 같은 대다수 NBA 주전급에 못 미치는 선수들과 라인업을 구성했다. 가넷을 제외하고 가장 실력이 좋은 선수가 리키 데이비스일 정도... 당시 울브스는 토론토에서 한 시즌 반짝 20점을 기록한 후보급 마이크 제임스에게 미드레벨 익셉션을 주고 데려오는 등 실책도 거듭했다. (제임스는 계약 이후 원래 모습으로 복귀) 팬들이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것은 07시즌 당시 아이버슨을 영입할 기회가 있었지만 유망주 랜디 포이를 지키느라 무산된 것. 포이가 이후 폭망한데다 득점 욕심이 많은 아이버슨과 비이기적인 가넷의 조합이 대단히 좋은 지라 많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 플옵에 실패한 3년간 가넷의 변함없는 활약에도 팀성적이 계속 떨어지자 전문가, 선배 선수들이 "가넷이 미네소타를 떠나야 한다"고 나서기도 했다. (07시즌까지 가넷은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한번도 트레이드를 요구하지 않았다) nba on tnt의 패널 중 한사람이자 레전드 포인트 가드 [[매직 존슨]]은 방송 도중 가넷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를 통해 "케빈, 넌 할만큼 했어"라며 9년인가 10년간 팀을 위해 공헌했는데 계속 이러면 이제 가도 된다고 말했다. 참고로 당시 가넷은 미네소타에서 12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매직은 레이커스에서만 선수 생활을 한 인물로서 프랜차이즈 스타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 이렇듯 가넷의 이적은 NBA 관련 인물 절대다수가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는데 이 점이 르브론 제임스의 10년 히트 이적과 매우 다른 부분이다. 일부 제임스 팬들은 "가넷은 왜 욕 안하냐"고 물타기를 시도하기도 했는데, 가넷은 이적 후 첫 미네소타 원정때 기립박수를 받았고 제임스는 첫 원정때 야유를 받았다. 케이스가 매우 다르다.] 결국 [[보스턴 셀틱스]]와 1:5 트레이드[* 선수 다섯 명에 지명권 두 장까지 해서 사실상 7대1 트레이드. 딜 당시만 해도 보스턴에서 나름 잘나가던 유망주들이 거의 전부 포함된지라 보스턴의 손해라고 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이후 이들이 거의 전부 폭망하며 이런 의견은 쏙 들어갔다.]를 단행하며 한 시대를 접고, 완전한 리빌딩 모드로 들어갔다. 보스턴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얻은 선수들은 결과적으로 미네소타에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성적도 완전히 곤두박질치면서 다시 초창기의 동네북 신세로 돌아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